고향의 봄
                                                                               고 순 덕

 

 “이랴~ 이랴~ 어더디! 어더어더 어더디! ........ 워어 워.”

 아버지는 농사 전 논의 한귀퉁이에 물을 대고 쓰레질을 한다. 겨우내 쉬었던 소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버지의 구령에 맞춰 울퉁불퉁 질퍽한 논바닥을 보드랍고 평평하게 쓸고 지난다. 한 해의 논농사를 위한 못자리 터를 다듬기 위해서다. 쓰레질이 끝나면 소는 논머리 버드나무에 매어 한숨을 돌리지만 아버진 쉬지 않고 삽질을 한다. 풀이 나기 시작하고, 겨우내 얼었다가 녹아 부푼 논둑을 깍고, 다시 논흙을 떠서 논둑으로 끌어올려 물을 바르고 삽으로 다듬고, 마지막으로 잔 발질로 다지고 또 다듬는다. 논둑이 터지면 큰일이다. 이 때 아버지의 한 발은 논에 다른 한 발은 연신 논둑을 다독이는 동안 삽도 머리를 논바닥에 쳐 박은 채 쉴 수 있다.

쓰레질
쓰레질

 하지만 아버진 이 때부터 농사일의 시작. 새벽엔 물고를 보러 삽을 들고 나가 런닝이 찢겨 오는 일이 허다했다. 농지정리 이전 요즘처럼 농로나 수로가 정비되지 않아 못자리나 모내기를 할 때면 물싸움이 허다했고, 물싸움은 개개인 한 둘의 싸움이 아니라 밀치고 말리다 보면 동네 싸움이 되는 일이 허다했다. 하지만 그 다툼은 점심나절이 지나기 전 막걸리 한사발이면 다 풀어지는 싸움. 모두가 한 집안이고 매일을 아래 위에서 농사지으며 볼 얼굴들이 마음에 앙금을 두어 어찌 살겠는가? 이 때쯤 집 마당에는 커다란 목욕다라이에 볍씨가 들어앉아 싹 틔울 준비를 한다.

모판 작업
모판 작업

 엄마는 시간에 맞춰 물을 갈아주고, 한해 농사를 위해 정성을 다 한다. 며칠 뒤 볍씨에 뾰족뾰족 흰 싹이 트기 시작하면 물을 받쳐 마련해 둔 못자리에 싹튼 볍씨를 고루 뿌리고, 대나무를 걸치고 비닐을 덮는다. 그동안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 들을 오가던 삽이 부지런히 비닐의 가장자리를 눌러 덮는다. 따뜻한 봄볕에 금새 비닐안에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힌다. 처음엔 뿌연 습이 차다가 물방울이 점점 커져 또르르 유성처럼 떨어진다. 아직 꽃샘추위가 남아있는 이른 아침 등굣길.

논둑하기
논둑하기

 길가의 못자리를 지나다 보면 누가 그랬는지 돌을 던져 구멍이 난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 장난스런 마음을 헤아릴 수는 있을 듯하다. 비닐 안 가득히 맺힌 물방울들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싶어 누군가 돌을 던졌을 거다. 나도 그 모습이 재미있어 비닐을 톡톡 손가락으로 쳐 보곤 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닐 안은 연두의 새싹이 초록으로 자라나고, 한 낮에는 비닐의 양 끝과 중간 중간 작은 문들을 열어 모가 타면 안된다며 온도를 맞추는 작업을 했다. 저 안에 들어가면 참 따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 안가고 저 안에 들어가 누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예나 지금이나 나의 엉뚱함은 참으로 남다르다.

 내가 사는 지역은 지금이 딱 못자리를 준비하는 때이다. 요즘의 못자리 준비 모습은 옛날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공동 육모장이 있고, 모판이 있으며, 볍씨도 손으로 흩뿌리지 않고, 모자리 흙도 따로 준비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작업을 하는데 모판에 흙도, 볍씨도 기계를 통해 작업이 된다. 아파트 같은 육묘장 안에서 모판들이 층층이 싹을 틔우고 자란다. 옛날처럼 모의 키를 많이 키우지도 않는다. 못자리를 만들기 위해 미리 논을 쓰레질하는 모습은 사라졌다. 들에 소가 일을 하러 나가는 모습을 어디에 가면 다시 볼 수 있을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변해져 가고 사라지는 모습들. 그래서 더욱 그리워지는 고향의 모습들.

육묘장
육묘장

 올해 봄은 유난히도 극성스레 다가온다는 생각이 든다. 지독히도 마지막까지 춥던 겨울을 지나 금을 그은 듯 여름에 가까운 봄인가 싶더니, 춘설이 풍년이다. 시내엔 벚꽃이 피는가 싶더니 며칠째 내린 비로 스러져 버리고, 뒤늦게 핀 내 집의 벚꽃은 태풍같은 바람의 괴롭힘에 사투를 벌인다. “그래도 봄은 온다!”라고 했던가? 앞산이 연두연두하고, 초록초록 손을 흔든다. 뒷산에 오르니 홑잎(화살나무 새순)이 햇살에 반짝인다. 부지런한 사람이 못자리 전에 시번(세번)은 따먹는다는 홑잎이 난걸 보면 못자리시기가 맞기는 맞나보다.

 나물반찬을 싫어하는 우리아이들도 홑잎무침은 잘 먹기에 바쁘게 잎을 훑어 담는다. 건너 산에서 고라니가 제 먹이를 빼앗는다고 사납게 비명같은 울음을 토해낸다. 아무리 극성을 부려도 고향의 봄은 이렇게 물어 익어 간다.

육묘장
육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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