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약의 기적

고 순 덕

 
 

 머큐로크롬. 일명 빨간약. 아까찡끼는 어릴 적 모든 것을 낫게 하는 유일한 약이었다. 어릴 적 나는 왜 그리도 잘 넘어지고, 무릎이 까졌는지? 그러면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위해지는 것은 빨간약 처방이었다. 그러잖아도 흙과 모레에 쓸려 상처가난 자리엔 벌겋게 피가 맺히거나 흘렀는데, 상처부위를 대충 닦아내고는 그 위에 어쩌면 피보다 더 붉은 아까찡끼를 바르면 따갑고 쓰라렸다. 그러면 온통 벌게진 무릎을 보면 넘어졌을 때 보다 더 커진 상처에 놀라고, 아픈 설움이 밀려들어 울음보를 터트리곤 했다. 지금 알고보면 아까찡끼는 단순 소독약 이었을 뿐인데 그 때는 그 처방이 다였다. 그래도 산과 들을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며 찔레순이며 짠데, 뽀삐 등 자연의 간식들을 채취해 먹고 건강한 덕인가? 이내 무릎엔 아까찡끼가 꾸덕꾸덕 마름과 동시에 진물도 마르고, 피부가 좀 조이는가 싶다가 따그레이(딱쟁이)가 앉았다.

  그 때는 본디 잘 씻지도 않았지만 아프다는 핑계로 더욱 씻기를 멀리해 며칠 동안은 무릎을 벌겋게 하고 다녔다. 아까찡끼는 실제 잘 닦이지도 않았다. 거뭇거뭇 따그레이가 굳고, 새살이 오르면서 간질간질 작은 따그레이는 나도 모르는 사이 떨어져 나가고, 빨간 아까찡끼도 죽은 살 껍데기와 함께 떨어져 지워졌다. 마지막 상처의 중심부 큰 따그레이를 뗄 때는 저절로 떨어지길 기다리지 못하고, 바깥쪽 벌어진 틈을 잡고, “스으읍 아~~!” 숨을 참아가며 조심조심 떼어내다 등골이 오싹 다시 피가 나기도 하고, 옷에 쓸리거나 다 나아지기도 전에 또 넘어져 까진데 또 까지면 다시 아까찡끼를 발라 쓰라림을 참아야 했다. 그 때는 저절로 딱쟁이가 떨어지길 왜 기다리지 못한 건지.

 
 

 빨간 아까찡끼는 무릎이 까졌을 때만 바르는 약은 아니었다. 배가 아파도 바르고, 머리가 아파도 발랐다. 그러면 말도 안되지만 배도, 머리도 다 나아지는 기분이었고, 이에 버금가는 약이 안티푸라민이다. 동그란 철제 초록색 통에 곱슬머리 천사 캡을 쓴 서양여자도 아까찡끼 못지않은 신통력을 가졌다. 다만 화~~하는 냄새와 기름진 번들거림이 한겨울 꼬질꼬질 튼 손등에 미끄럼질을 하면 역시 따끔따끔. 심하게 튼 손등과 볼엔 실오라기 같은 따그레이가 앉는다. 이 두가지 약만 있으면 낫지 않는 상처가 없었다. 그리고 이보다도 더 전에는 된장이나 약쑥, 고약을 쓰기도 했다는데 어릴 적 “고바우약국”에 대한 광고를 듣고 본 기억이 나기도 한다. “고바우 영감이~ 고개를 넘다가~ 고개를 다쳐서~ ...... 큰 일 났다네~” 뭐 그런 노래를 부른 것도 같고.

 아까찡끼의 마지막 신통력은 다섯 살까지 젖을 먹던 동생을 울리고 엄마의 품에서 떼어냈다는 사실.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동생은 다섯 살 이었고, 큰언니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동생은 그 때까지 다 묽어지고 마른 엄마의 젖을 떼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윗마을 아지매한테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엄마는 결심을 한 듯 가슴에다 아까찡끼를 벌겋게 발랐다. 그리고 놀다 들어와 엄마의 가슴을 헤쳐여는 동생에게 “엄마 아야. 지지 안돼. 못 먹어.”라고 했고 동생은 일차 화들짝 놀라 물러섰다가 이내 울며불며 엄마의 젖가슴을 닦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말라 피부에 스민 아까찡끼는 닦일 리 없고, 동생은 울며 겨자 먹기, 아니 밥을 먹어야 했다. 동생 말고 다른 아이는 그래도 젖을 빨자 이번엔 마이신(캡술 속 쓴 가루약을 꺼냄)을 발라 붉고도 쓴 맛을 보고야 떨어진 아이도 있었다. 당시 우리 마을에서는 내 동생 말고도 아까찡끼의 위력에 밀려 젖을 뗀 아이들이 제법 되었던 것으로 안다.

 
 

 그렇게 자란 내가 어른이 되고 나의 아이들은 밴드가 아까찡끼의 자리를 대신했다. 조금만 긁히거나 베어도 밴드만 붙이면 울음이 뚝. 배가 아프면 제 스스로 배에다 밴드를 붙이고 치료하는 귀여움을 보였고, 머리가 아프면 이마에, 동생이 아프면 동생의 얼굴에도 붙여주는 아량을 보였다.

 하지만 이젠 잦은 두통에 시력도 떨어지고, 조금만 무리하면 피곤에 절어 움직이기도 싫어지면 갖가지 약과 영양제들이 가득한 서랍을 열어 한줌 털어 넣어 보지만, 아까찡끼만한 효력을 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주변사람들에 상처입고, 아이들에 대한 과한 욕심과 기대로 가슴앓이 할 때, 나도 가슴 가득 아까찡끼를 바르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젠 아까찡끼 보다는 시간이, 사랑이 약이란다. 어느 유행가 가사에 이런 노랫말이 있었다. “아기 때는 젖주면 좋아하고(아하), 아이 때는 노는 걸 좋아하고, 저 가는 세월속에 모두 변해가는 것. 그것은 인생! ...... 시작도 알 수 없고, 끝도 알 수 없네. 영원한 시간 속에 잠시 서 있을 뿐. 우리가 얻은 것은 진정 무엇이고, 우리가 잃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저 가는 세월 속에 아까찡끼 없이 빈 손으로 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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