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털한 겨울대비책

고 순 덕

 3주 연속 특별한 날씨의 주말이 이어지고 있다. 첫 눈이 내리고, 다음은 포근한 겨울비, 그리고 지금은 한파. 하기야 이젠 첫 눈도 내렸겠다 이미 날짜도 12월 하고도 중순이니, 틀림없는 겨울이다. 벌써 감타레에선 곶감 단내가 폴폴 바람타고 마당을 휩쓴다. 슬슬 겨울장사 준비를 시작해야 하나보다. 그리고 아들을 위한 털털한 겨울대비책 하나! 털목도리를 떴다.

 
 

 얼마만에 하는 뜨개질인지 기약없는 기다림에 지루한 근무시간, 탁자 밑에서 솔솔 풀려오는 실을 대바늘에 걸어 앞으로 뒤로 넘겨가며 당기길 몇 번씩이나 했을까? 여덟타레의 실뭉치를 한줄에 엮어 욕심껏 2미터가 넘는 털목도리를 짰다. 막내가 고3때 하나 짜 주겠다 약속했던 것을 만2년이나 지난 이제야 선물하게 되었다. 3주 전 면회를 가서 색깔은 본인이 직접 골랐고, 이제 곧 외박을 나온다고 하니 그 때 오면 따뜻해 보이는 빨간 가방에 넣어 줘야겠다.

 요즘엔 아이들이 학교에서 뜨개질을 교과에서 배우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단발머리시절 가사시간에 코바늘뜨기, 대바늘뜨기, 블라우스, 치마, 바지, 한복만들기 등도 배웠었다. 아마 까까머리들은 이 때 농업이나 기술 등의 교과에서 실 가정생활에 필요한 간단한 전기 퓨즈 교체법 등을 배웠을 것이다. 단발머리 1년차 때였을까? 겨울방학을 앞두고 목도리와 모자뜨기를 배웠고, 숙제로 제출해야 했다. 난 예전엔 비둘기색 지금은 그레이로 통용되는 회색류의 털실을 샀다. 그리고 처음엔 신이나서 두줄고무뜨기로 목도리를 시작. 쉬는시간, 점심시간, 텔레비전을 들으면서 등등 짬만 나면 아니 어떻게든 짬을 내서 뜨개질을 해 나갔다. 한번만 해 보자는 동생의 애원도 매몰차게 거절해 가며, 떴다가 순서가 틀려 다시 풀고 하기를 무한 반복했다.

 하지만 잘 늘어나지 않는 길이에 이내 실증을 내고 짜증까지 스믈스믈 올라왔다. 더 이상 가방에도 넣어가지 않고, 과제물 제출할 때가 다 되어 징징거리던 다음 날. 목도리가 길어져 있었다. 어찌된 일이었을까? 엄마다. 엄마가 느려터져 숙제를 제때 못한 딸을 위해 대신 수고를 해 준 거다. 다음 날 숙제검사 시간. 선생님은 내 목도리의 뜨개 솜씨가 처음과 다르게 좋아졌고, 가장 길고 예쁘게 떠졌다고 앞으로 들고 나가 선까지 보이셨다. 물론 평가점수는 만점. 기뻤지만 자랑스럽진 못했던 기억. 그래서 방학숙제로는 엄마의 털모자를 떠 드렸다. 엉성한 솜씨라 좀 웃기게 떠졌지만, 엄마는 그 모자를 한동안 즐겨 써 주었다. 희끗희끗한 쪽진머리 위에 회색 털모자를 쓰고, 부엌으로 나 있는 쪽문 앞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눈이 많고 겨울에도 밖에서 곶감작업을 해야하는 지역의 특성에 대비한 털털한 겨울준비 둘!! 털신 되신다.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던 털신이 다시 시장에 나오고, 요즘 동네 할머니나 할아버지들 보다 젊은 새댁들에게 더 털신이 인기다. 지난 휴일 시누와 동네 형님, 같이 일하는 분까지 하나씩 털신을 준비했다. 폭신폭신 따뜻한 털신. 내 국민학교때는 말장화가 유행이었다. 빨간색 털부츠! 경희도 나처럼 나이 많은 엄마의 딸이었지만 망토에 손목과 목에 털이 달린 잠바와 종아리까지 오는 털장화를 신고 다녔다. 눈보라를 맞으며 학교에 와도 하나도 추워 보이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쪽진머리에 한복을 입고, 가끔 아주 가끔 학교에 왔지만, 경희네 엄마는 파마도 하셨고, 양장을 하고 학교에 오셨다. 그래서 딸인 나는 매일 언니한테 물려받은 예쁘지도 않은 옷을 입고 다니고, 경희는 예쁘게 하고 다닌다고 샘이 났었다.

 
 

 어디 그 뿐이랴? 뽀얀 앙고라 털장갑은 정말이지 갖고 싶은 최고의 아이템 이었다. 그저 그런 천원짜리부터 이천원, 삼천원이면 최고급의 앙고라 벙어리털장갑을 살 수가 있었는데, 난 그 소원을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 좋지만은 않았다. 장갑에서 털이 빠져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검은색 옷에 보기 흉하게 붙었다. 그래도 좋기는 했다. 오랜 소원을 이루었으니......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쩜 정작 그 옛날 울엄마에겐 털신마저도 없었던 것 같다. 늘 고무신이거나 작은오빠가 신던 낡은 운동화를 신었던 것도 같고, 갑자기 마음이 아려 온다. 지금 사 드릴수도 없는 처지여서 더욱......

 언제나 생각나는 엄마지만 또 언제나 잊고 지내는 부모님이 이상하게도 힘이 들고 아프면, 그리고 추운 겨울이면 더 생각이 나는 이유는 뭘까? 창문을 흔드는 바람소리 거친 새벽. 따뜻한 겨울을 위해 털신, 털목도리, 털장갑, 털코트 털털한 겨울대비책 다들 준비하셨나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와 주변을 돌아볼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이 한파를 견디어 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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