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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문학] 우리 집 천연 가습기고순덕의 생활수기시리즈 81번째
변해철 편집국장  |  ynt@y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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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9  09: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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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천연 가습기

고 순 덕

 

 전국이 연일 미세먼지로 뿌옇다. 더불어 극심한 겨울 가뭄은 기어코 수차례재난 문자를 발송하게 했다. 미세먼지와 건조에 대한 주의보다.

 코 속이 늘 붉게 헐어 따갑고 아프다. 처음엔 내가 피로해서 생긴 증세라 생각했다. 병원을 다니고, 쉬고, 연고를 발라봤지만 잠시 차도를 보일뿐 완치되지 않았다. 그런데 목욕탕을 다녀오는 날은 좀 덜함을 느꼈다. 가습기가 있지만 꺼내기가 귀찮다. 코 속을 촉촉하게 하기위해 어떤 날은 실내에서 마스크를 하고 있기도 하고,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쓰고 자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빨래를 실내에 널고 잤더니 코 속이 편안했다. 그래서 요즘은 퇴근을 하면서 세탁기를 돌리고, 밤새 건조대에 빨래를 널어 말리는 습관이 생겼다. 천연 가습기다.

   
 

 그 옛날 엄마의 가습기도 있었다. 간간이 나는 물소리가 아름다웠던 가습기. 이 가습기의 부산물은 먹을 수도 있었다. 단지 조금 배릿, 콤콤한 냄새가 나는 부작용이 있기는 했지만, 이 가습기는 한여름을 제외한 가을부터 봄까지 윗목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콩나물시루!

 물을 담은 커다란 양은 다라이 위에 브이자 거치대가 놓이고, 그 위에 구멍 뚫린 시루가 앉혀진다. 시루는 떡을 찔 때도 사용하지만 이렇게 콩나물을 놓을 때도 등장했다. 시루의 바닥에는 구멍을 막기 위한 볏짚이 깔리고, 그 위에 불린 질굼콩이 올려 진다. 이제 시커멓고 약간의 두께가 있는 보자기를 덮고는 콩의 표면이 마르지 않게 자주 물을 끼얹어 주기를 반복한다. 실내 기온에 따라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뽀족이 콩껍질을 가르고 싹이 밀고 나온다. 그래도 아직은 콩이 고유의 제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이 때는 물을 더 정성스럽고 자주 주어야 한다. 물을 세차게 쏟아 주다보면 콩이 마구 흩어져 가지런히 발을 밑으로 내리지 못하고 구불구불 뒤엉키게 되기도 한다. 엄마는 손등에다 물을 부어 간접 관수를 했다. 엄마는 언제나 지혜로 왔다. 그렇게 제대로 자리를 잡고 나면 되도록 자주 많은 물을 주어야 잔발도 없고, 질기지 않게 자란다. 엄마의 정성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잠을 자다 꿈을 꿨는지 졸졸졸 물소리에 선잠을 깬다. 졸졸졸 물소리는 오줌을 불러오고, 잠을 깨기도, 일어나기도 싫은 난 돌아 누우며 배를 웅크리고 참아본다. “졸졸 졸졸 똑똑 똑똑.” 가늘고 긴 물줄기 소리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로 바뀌고, 엄마는 뒤척이는 나를 향해 낮은 소리로 그러나 엄하게 내 뱉는다.

“오줌 매루만 얼러 인나 노래이. 싸지 말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벌떡 일어나 윗목 문 앞에 있는 요강뚜껑을 연다.

“다 큰기 어데 그서 눌라고, 마다 나가 안누나?”

   
 

 그렇게 긴긴 겨울밤 나의 단잠을 깨우던 콩나물시루는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특유의 배릿하고 콤콤한 냄새가 나게 된다. 안에서 하나 둘 콩이 물러 썩기도 하고, 물을 여러 날 가둬두고 콩나물시루의 위 아래로 오르내리다보니 그런 특유의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 즈음이면 엄마는 보자기를 들추고 잘 자란 콩나물을 한웅큼 뽑아낸다. 그 날은 잘 익은 김치와 고소한 콩나물이 조화를 이룬 시원한 콩나물김칫국이 밥상에 오른다. 그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요즘 시장에서 사먹는 콩나물과는 차원이 다른 고소함이 있었다. 큰집 큰엄마의 방에는 우리 집 것보다 더 큰 콩나물시루가 더 자주 자리하고 있었다. 엄마의 시루는 엄마가 워낙 엄하게 단도리를 하셔서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나도 표주박으로 콩나물 물주는 일을 꼭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큰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얼른 보자기를 벗기고 물을 퍼 올려 부었다. 졸졸졸 물소리가 해맑다. 그런데 마루위로 큰엄마의 발소리가 나고, 문고리 잡는 소리가 난다.

‘어쩌지? 어쩌지?’

 얼른 보자기를 덮어두고 원래 내가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가 시치미를 뚝 떼고 앉는다. 하지만 똑똑똑 물방울이 멈추질 않는다.

“눈굴따이(눈이 커서 붙여진 어릴 적 별명:눈 굵다. 눈 크다란 뜻) 질굼에 물 줬나?”

 가슴은 콩닥콩닥, 얼굴은 화끈화끈, 머리를 긁적긁적 그저 베시시 웃을 뿐. 무섭게 야단할거라 생각한 큰엄마는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그 옛날 없던 시절에 콩나물시루는 먹거리를 스스로 길러 먹는 방법이기도 했기만 건조했던 계절에 가습기 역할까지 톡톡히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또한 선조들의 지혜가 아닌가 싶다. 언제나 지혜로웠던 엄마, 그 딸인 난 겨우 아이들의 방학과제를 위해 숟저통에 콩나물 기르기를 함께 해 본 일이 있었다. 이번 설 명절을 위한 콩나물 기르기 다시 한 번 도전 해 볼까나?

   

▲ 고순덕

- 2017경력단절예방 우수사례공모작 대상 수상

- 영남투데이 생활수기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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