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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문학] 이 눔이 그 눔!고순덕의 생활수기99번째
변해철 편집국장  |  ynt@y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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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25  09: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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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눔이 그 눔!

고 순 덕

 내 고향 유월엔 오디 맛이 한껏 오른다. 아부지가 아침저녁으로 쪄 오는 뽕나무 가지에 달린 오디는 작지만 더할 수 없이 달았다. 이른 아침 아부지가 주는 선물 같았다.

   
 

 5월 말, 유월 초쯤이면 엄마는 안방 윗목 작은 네모 틀에 까만 깨알보다도 작은 씨알들을 키우셨다. 따뜻한 방안에서 며칠이 지나면 무언가 꼬물꼬물, 아주 작은 체구의 아주 작은 움직임이 보이고, 엄마는 그 꼬물이들을 닭 깃털로 쓸어주며 펼쳤다. 그리고 새파란 뽕잎을 밀어놓은 국수마냥 돌돌 말아서 실오라기처럼 채를 썰어 꼬물이들 위로 솔솔솔 뿌려 주었다. 그런 횟수가 늘어 날수록 꼬물이들은 점점 커져갔고, 엄마의 칼질도 성글어졌다. 아부지의 손바닥만 하던 씨알이 꼬물이로 변했다가 누에로 되는 동안 상방, 아랫방 할 것 없이 모두 삼⦁사층의 장박으로 가득 찼다. 식구들은 장박 밑이나 안방에 모여 잤고, 아부지는 쉴 새 없이 뽕을 쪄 지게에 지고 날랐다.

   
 

 처음엔 엄마의 손을 빌어 뽕잎을 썰어 먹이를 주던 것이 나중엔 뽕나무 가지채 척척 걸쳐서 주어도 사그작사그작 금새 뽕잎이 사라지고 줄기만 남았다. 그렇게 석잠, 넉잠을 자고 섶에 누에를 올리고 고치를 짓기까지는 한 달 남짓? 누에고치의 색깔이나 무게에 따라 그 가격이 결정되어 졌다고 한다. 누에치기는 봄, 가을 육⦁칠남매를 둔 부모님의 짭짤한 부업꺼리였다. 그것으로 육성회비도 내고, 중학생 등록금도 내고......

   
 

 그 돈은 부모님의 잠과 맞바꾼 것이었다. 누에가 커 갈수록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뽕잎을 대 주어야 했는데, 이렇게 몇 주씩 잠을 설치고 나면 서서도 잠을 자는 지경 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피로에 절은 외삼촌이 아랫방에서 누에를 돌보다 깜빡 잠이 들려는 순간 봉창 쪽에서 고양이 소리가 “야옹야옹” 들리더란다. 그 소리에 잠이 깨어 돌아누웠다가 다시 잠이 들려는데 또 “이~야~오옹~~ 이~야~오옹~~.” 몇 번을 반복하니 처음엔 잠을 깨워준 고양이가 고마웠지만, 한동안 잠을 자지 못해 신경이 날카로왔던 외삼촌은 벌떡 일어나 뒤안으로 갔다. 낮에 물고기를 잡고 세워 두었던 족대를 들고 고양이를 쫓기 위해 간 그 곳에는 동네 머시마들이 봉창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고양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누무 새끼들! 잠 안자고 뭐하는 기라! 너들이 도둑갱이라 머라?”

 외삼촌의 족대는 달빛아래 허공을 날아 다녔고, 일요일인 다음 날 아침 마을 부역이 있었다. 이집 저집 할 것 없이 누에를 치느라 잠이 부족한 탓에 말만한 머시마들이 아부지를 대신해 부역에 나온 집이 많았는데, 외삼촌은 그 날 아침 어젯밤의 그 도둑고양이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외삼촌과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쭈삣쭈삣 인사하는 머시마들 몇.

“아재 나오싰니껴?”

“아침 자싰어요?”

하는 놈들의 장발 위에 허연 물고기 비늘이 반짝였다고 한다.

‘이 눔이 그 눔이구만!’

 지난 밤 도둑고양이도, 물고기도 아니면서 족대를 뒤집어썼던 그놈들은 학교 안가는 일요일을 앞두고 동네에서 소문나게 예쁘고 깐깐했던 큰언니를 불러내 어째 볼 생각 이었나보다. 본디 누에를 치기 전에는 큰언니가 그 방을 쓰고 있었고, 그것을 안 동네 머시마들이...... 그렇다고 불려나갈 큰언니도 아니었지만, 외삼촌에게 제대로 걸린 다음부터는 도둑고양이가 외가 주변엔 얼씬도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 다음블러거에서 펌

 또 어떤 지인은 큰딸은 살림밑천이라고 국민학생 시절부터 학교도 가지 못하고, 엄마를 도와 누에를 먹였다고 했다. 그렇게 몇 주씩이나 학교를 결석하고 나면, 공부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이해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공부에 취미가 없었다는 말이 단순 변명처럼 들리지 않았다. 처음 누에알을 가지고 왔을 때 뭔지도 모르고 알을 톡톡 눌러 터트리며 놀다가 엄마한테 혼나던 나와는 다른 모습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지인의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유월 말 이제는 오디 따기도 끝날 무렵, 한 때 온 집안을 가득 채웠던 푸른빛이 감도는 뽀얀 누에와 배릿하면서도 초록 풀내음이 나던 그 슬레이트집이 생각난다. 그 곳에는 아부지, 엄마, 그리고 철부지한 육남매의 복닥거림으로 가득했었는데 이제는......

오랜만에 뻔디기라도 먹으며 추억을 곱씹어야 겠다.

   

▲ 고순덕

- 2017경력단절예방 우수사례공모작 대상 수상

- 영남투데이 생활수기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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