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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옛날 사람들의 낙동강 이야기김정찬 상주역사인물연구소장
변해철 편집국장  |  ynt@y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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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8  10: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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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의 낙동강 이야기

김정찬 상주역사인물연구소장

 경천대에서의 詩會 행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집약해 놓은 자료는 거의 없고 여기저기에 산발적으로 노출되어 있을 뿐이다. 현재까지 찾아본 자료 가운데 가장 가치가 있는 자료는 ‘上洛唱酬詩集’이다.

 이 시집은 경천대와 도남서원에서 박천 이옥의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문회를 가진 후 서문을 쓰고 시를 적어 만든 시첩이다. 그 서문을 통해 경천대가 역사적으로 문회의 장소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초서로 쓴 그 서문의 내용이다.

   
▲ 경천대

 나[이옥]는 경기도 파주에 3년째 거주하고 있었다. 3년 동안 연속하여 흉년을 당하여 먹을 것도 없게 되어 어디 다른 곳으로 옮겨 가려고 했다. 그러자 모두들 “춘태[이만원]가 상주[上洛]에 수령을 지내고 있고, 상주는 또 공의 3대 선조께서 살던 곳이니 이곳이 참 적당한 곳입니다.”라 했다.

   

 춘태는 우리 종가의 주손[宗冑]이다. 일찍이 규장각의 관원[閣臣]으로서 평안감사[按西闑]를 지냈으며 자(字)가 백춘(伯春)이라는 사람이다. 나는 큰 강을 건너고 높은 고개를 넘어 상주에 도착했다. 당시에 춘태는 상주에 부임한 지 2년이나 되었었다. 2년 동안 흉년을 당하였지만 백성들을 편안하게 살도록 하였으니 관리로서 직분에 충실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내가 춘태에게 말하기를 “옛 사람들은 거문고를 울려서 교화하기도 하고 샛별을 보면서[戴星] 열심히 다스렸다고도 하는데, 그대는 어떤 경우에 들어가는가?”라 하자, 춘태가 웃으면서 “지방은 사정이 다른 경우가 있고, 때도 각각 다른 경우가 있으니 전체적으로 직분을 다하고 임금의 은혜를 갚기만 애쓸 뿐입니다. 그러나 공무에 바쁘다고 어찌 하루 정도의 시간을 내어 담소하고 기분을 푸는 시간도 갖지 못하겠습니까?”라 했다.

 그래서 상주의 동쪽에 있는 낙동강[洛江]을 약속 장소로 잡았다.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은 고인이 된 스승 성노(省老)라는 분의 조카이자 전 양양군수인 친구 허여(許如), 이종(姨從) 형님되는 매옹(梅翁)이라는 분의 아들인 류구숙(柳久叔), 춘태의 동생인 만성(萬成)․만근(萬根)․만익(萬益)․만종(萬鍾) 그리고 나의 둘째 아들인 만부(萬敷) 등이었다.

   
▲ 경천섬

 이에 숲을 가로 질러 교외를 벗어나 산에 들어갔다. 산허리를 돌아 왼쪽으로 돌아가니 이곳이 이른바 ‘자천대(自天臺)’이다. 문득 이 몸이 어디에서부터 이렇게 기이한 볼거리가 있는 곳에 와 있게 되었는지 모르게 되었다. 삼봉산 한 자락이 물을 앞에 두고 똑 바로 서 있고, 산기슭에는 수북한 돌이 바위에 붙어 있는데 저절로 3층의 대를 이루고 있었다. 제일 아래의 대는 수 백 명이나 앉을 만한 땅이고 중간과 제일 꼭대기도 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었다. 이곳에 붙어선 돌은 몇 백 장(丈)이나 되는 절벽에 이어져 있었다. 낙동강은 그 앞을 지나가고 저 먼 앞에는 구름을 머금은 산들이 마주서 있으니 마치 병풍을 펼치고 장막을 드리운 것 같아 그 산을 이름하여 ‘상악(上嶽)’이라 한다. 그 아래의 물에는 용암(龍巖)이 있는데 구름 뿌리가 강에 꽂혀 있어 마치 솥의 발 모양과 같다. 배를 타고 가다가 비바람을 만날 때 그 굴에 들어가면 비바람을 피할 수 가 있을 정도이다. 또 옥주봉(玉柱峯)과 동암(動巖)의 돌이 있고 청룡사(靑龍寺)의 죽림(竹林)이 난초처럼 빼어나니 놀면서 즐길 만 한 곳이 매우 많았다. 영남[嶠南]의 맑고 깨끗한 기운이 전부 이 낙동강에 있으니 지리서[圖經]에서 말하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이에 밥그릇[官鐃]과 비단방석을 놓고 꽃다운 풀 위에 모여 앉아 술 삼배(三盃)를 돌리고 운자를 불러 시를 지으며, 같이 모인 사람들이 서로 돌아가며 주고받았다. 짚신을 신고 대나무 지팡이를 짚으며 노소(老少)가 서로서로 줄을 지어 물가의 모래까지 걸어가 육지를 멀리하고 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는데 그 때는 여름[주명]의 정 중간의 날[正中]이었다. 양쪽의 강 언덕은 군데군데 푸르고 비도 내리다가 그치니 강의 풍경이 더욱 깨끗하여 서울에서 500리나 멀리 떨어진 파동(巴東)에 속하는 구인(昫䏰)[중국 사천성에 있는 현 이름]이라는 사실도 잊게 되었다.

   
▲ 도남서원 전경

 드디어 배를 타고 도남서원(道南書院)으로 내려갔다. 도남서원은 고려말의 포은 정몽주 선생을 모셨고, 우리 조선시대의 한훤당, 일두, 회재, 퇴계 등 네 선생의 영령을 모셨으며, 소재, 서애 그리고 우복 세 선생을 나중에 또 모신 곳이다. 만약 정암 조광조 선생만 모셨다면 문묘의 5현과 같게 된다. 그러나 정암 선생은 평소 지낸 곳이 다르고, 묘[衣履]도 서울에 있지 남쪽에 있지 않다. 그 사당과 강당의 지붕구조[廡翼]는 전체적으로 보면 성균관과 규모가 같다. 전사(典祀)[제사 공간]의 공은 우복과 창석 두 분이 하상(河上)[서애 류성룡]께 여쭈어 정하도록 했는데 그 이름을 ‘도남’이라고 했다. 조정에서 사액을 내리고 시절마다 관청 주도로 제향을 올리고 물품 또한 조정에서 넉넉하게 내려주니 선비들이 기쁜 마음으로 감탄하고 기뻐하였으니 관민(關閩)에 견줄 만하지 직하(稷下)[학자 우대하는 고을 이름]는 감히 비교되지 않는다.

 나는 명의(明衣)[제사 때 입는 속옷]를 가지고 오지 않아 배알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좋은 날[良辰]에 다시 오려고 한다. 이제 다시 배를 놓고 영귀대(詠歸臺)에 올라 앉아, 자천대에서 그랬듯이 술을 마시고 시를 지었다.

 아! 나는 살면서 나라를 두루 다녀보았지만 영남 지역은 제대로 찾아보지 못했었다. 옛날에 암행어사로 비밀리에 다닐 때는 그저 겉보기 정도에만 그쳤었다. 지금 다행히도 먼 길을 떠나 객지를 다니는 상태에서 좋은 곳에서 놀게 되었다. 일가족이 이렇게 많이 단란하게 모였고, 강산이 이렇게 뛰어나며, 유선(儒先)이 쳐다보고 향하는 바가 이처럼 공경할 만 하게 되었다. 나는 마침 별로 구속됨이 없는 상태의 사람이고, 춘태는 공무를 보면서 이처럼 시간을 내어주었으며, 우리 집안의 여러 자제들이 시 짓는 공부를 이처럼 많이 하였으며, 또 허씨 친구와 류군이 함께 자리를 하였으니, 오늘의 이 모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며 “내 평생에 제일 멋진 날이다”라 해도 될 만하겠다. 시를 지을 때 운자 맞추는 것과 잘되고 못 된 것 같은 것은 전문적으로 시 짓는 사람들에게나 맡기고, 우리는 그저 시 구절을 얻으면 좋아하고 내가 지을 것을 빼앗기면 조금 섭섭해 할 정도뿐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또한 군자들의 비난을 면할 수가 있으리라.

 춘태와 서로 마주 쳐다보고 웃으며 자리를 끝냈다. 그 자리에서 지은 시를 모아 시첩을 만들어 훗날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이렇게 서문을 적어본다.

 

 이 외에도 이만부, 강박, 강필공, 이승연, 이병연, 이협, 정상관, 남기섭, 남장섭 등 수많은 분들이 시를 남기고 있다. 앞으로 도남서원이나 경천대에서의 문회 자료를 더 발굴하여 재미있는 이야기 소재를 홍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외삼 김정찬 역사인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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