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대로 열 수 있다."

‘누구나 마음대로 열 수 있다.’라는 뜻의 글을 써서 마개 가림판을 만들어 붙여진 쌀 뒤주가 있었다. 일용할 양식이 없는 이는 어느 누구나 쌀 뒤주 아래쪽에 마개 가림판을 열고 쌀을 퍼갈 수 있었다. 또한 쌀 뒤주를 놓아둔 위치도 집 주인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두어 쌀을 가져가는 이가 마음 편해지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런 쌀 뒤주를 놓아둔 이는 조선 영정조 시대의 명신이였던, 귀만 유이주(歸晩 柳爾胄: 1726~1797) 공으로 대구의 해안에서 출생, 학업을 한 후 조정에 출사, 여러 벼슬을 거친 후 정조 6년에 처가가 있는 지리산자락, 구례 땅에 정착, 운조루(雲鳥樓)라는 집을 짓고 후진양성에 힘쓰며 일생을 보냈다. 그런데 이 집의 곡간 채 앞에는 ‘누구나 마음대로 열 수 있다.’라는 뜻의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네 글자가 새겨진 쌀 뒤주를 두었으며, 해마다 이백 여 가마의 쌀을 추수하여 거두어 들였는데, 이 쌀 뒤주를 통하여 베푸는 쌀이 대개 서른여섯 가마 정도였다고 한다. 이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의 굴뚝 높이를 석 자(1m정도)도 안 되게 낮게 만들어 밥 짓는 연기가 배 고픈 이웃에게 보이지 않도록 했다. 연말이 되어서 이 쌀 뒤주에 쌀이 남아 있으면 이웃과 손님 접대를 소홀히 했다고 해서 일을 돕는 집사들이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거듭되는 흉년으로 봉기되는 여러 가지 민란과 구한말의 동학민란, 일제의 해방 후 발생한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많은 고관대작과 지주의 집이 파괴되는 수난을 격었지만, 운조루는 파괴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지금도 후손들이 살고 있다. 이 일화는 나눔의 마음도 훌륭하지만 받는 이의 마음까지 배려한 아름다운 이야기로,  날씨가 추운 이 계절에 거듭되는 세계 경제 불황으로 여유롭지 못하고 마음 마저 조급해지는 이때에 가까운 벗과 이웃에게 큰 귀감이 되는 좋은 이야기이다.

윤장원 박사
윤장원 박사

♦윤장원♦

호는 유천(裕泉), 박사, 시인, 수필가, 한시시인

전)FAO-CGIAR-ICRISAT 국제작물연구소, 수석연구원

현) BENGUET STATE UNIVERSITY,
Lifetime Achievement Professor (종신석좌교수)

현)농사협(RSDC), 농촌개발본부장

현)정부 공적원조(ODA) 전문가 개발도상국가에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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