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알 좀 먹어 줄 사람?고 순 덕 무속인도 아닌데 엄마는 가끔씩 이상한 행동을 했다. 평소에는 쌀 한 톨도 아끼느라 우리가 흘린 밥알 하나까지 주워 입에 넣고, 밥그릇 벽에 하나 둘 밥알이라도 붙여 남기면 복 달아난다며 떼어 먹으라던 엄마가 솔가지나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서 집 여기저기 떠서 버리고 다닌다. 그리고 무언가 알아듣지 못 할 주문같은 말을 중얼중얼. 집안 여기저기에 팥죽을 떠두고, 촛불까지 켜 굽신굽신 빌고 인사를 한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럴땐 엄마가 멈칫 무섭기까지 하다. “엄마엄마 머해여? 머하는데
털털한 겨울대비책고 순 덕 3주 연속 특별한 날씨의 주말이 이어지고 있다. 첫 눈이 내리고, 다음은 포근한 겨울비, 그리고 지금은 한파. 하기야 이젠 첫 눈도 내렸겠다 이미 날짜도 12월 하고도 중순이니, 틀림없는 겨울이다. 벌써 감타레에선 곶감 단내가 폴폴 바람타고 마당을 휩쓴다. 슬슬 겨울장사 준비를 시작해야 하나보다. 그리고 아들을 위한 털털한 겨울대비책 하나! 털목도리를 떴다. 얼마만에 하는 뜨개질인지 기약없는 기다림에 지루한 근무시간, 탁자 밑에서 솔솔 풀려오는 실을 대바늘에 걸어 앞으로 뒤로 넘겨가며 당기길 몇 번씩이나
겨울 소리, 겨울 내음.고 순 덕 “야들아 인제 고만 놀고 들어 온네이.” 풀이 말라버린 뒷동산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산태를 타다보면, 집집마다의 굴뚝엔 뽀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온 마을을 연기구름으로 뒤덮어 버린다. 이를 뚫고 들려오는 젊으신 엄마의 우렁찬 음성. 이산저산의 갈비(솔잎)를 끌어 모아 아궁이를 데우는 내음 가득하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 갈잎 타는 내음. 겨울을 따뜻하게 하는 소리요 내음새 이다. 초겨울이면 떡하니 아랫목을 차지한 삶은 콩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메주콩을 삶던 날 한소쿠리 따로 덜어
부질없는 약속고 순 덕 2017년 11월 24일. 첫눈이 내렸다. 언제부터 내렸는지 아침에 눈을 뜨니 첫 눈답지 않게 소복이 쌓여 있었고, 출근을 하고도 한참을 더 내렸다. 그 날은 일하는 곳에 단체손님이 오기로 예약되어 있어서 출근과 함께 눈을 쓰느라 분주했다. 결국 먼 곳에서 오신 손님들은 미끌미끌 조심조심 미리 터놓은 오솔길 같은 눈 사이 좁은 길을 걸어 오셨다. 그리고 그 많던 눈이 몇 몇 추억할 수 있는 사진만 남긴 채 언제 왔냐는 듯 이내 녹아 버렸다. 2018년 11월 24일. 첫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요란하더니, 흩날
메주눈알고 순 덕 “요것들이 또 미주눈알을 빼먹네. 너들 자꾸 미주눈알 빼 먹으만 니 눈알도 빠진데이!” 엄마의 살벌한 호통이 하나도 무섭지가 않다. 꾸덕꾸덕 겉말라 굳어가는 메주에서 덜 찧어진 콩알을 떼 내어 씹는 맛이 일품이다.여느 날과 달리 아침 일찍 시죽(소 죽, 여물)솥뚜껑 밀어여는 소리가 요란하다. 메주를 쑤는 날은 소가 아침밥을 더 일찍 먹는 날이다. 시죽을 얼른 퍼 주고 엄마는 빈 시죽솥을 씻는다. 지푸라기를 둘둘 말아 문지르기 위해 찬물을 한바가지 부우면 달아오른 솥이 김을 모락모락 토해낸다. 손이 뜨겁지도 않은지
와롱이고 순 덕 “와롱와롱와롱...... 쏴아 타다다다닥 와롱와롱와롱” 콩 단을 들이대면 콩깍지를 떨구어 내고, 콩알들을 꺼내는 그것을 우리는 와롱이라고 불렀다. 일요일 아침 아버지는 일찍부터 분주하다. 마당 가운데에 장대를 서넛 서로 기대어 묶고, 대발을 둘러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와롱이를 모셔다 둔다. 흡사 겨울철 김장독을 묻은 움집과도 같다. 대신 땅을 파지는 않고, 바닥에 멍석을 깔았다. 그 옆에는 가을 햇살과 바람에 며칠씩 말려둔 콩 단이 산처럼 쌓여 있다. 이내 엄마는 월남치마에서 몸배(일)바지로 갈아입고 머리에 수건을
난 부자다고 순 덕 지역의 특산물인 곶감을 만들기 위한 큰 일거리인 감 깍기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일어난 불상사. 지난 토요일 함께 일하시는 분의 손에 뽀얀 붕대가 감기어져 있다. 전 날 감깍기 작업을 하다가 감꼭지 치는 기계에 손톱을 다쳤다는 것이다. 피가 얼마나 나던지 갑자기 피잉 도는 것이 현기증이 나고 한기가 느껴졌다고 한다. 바깥분과 급히 응급실에 다녀왔다고 하는데, 얼굴이 하룻밤사이 반쪽이 되었다. 나도 십년전쯤 비슷한 일이 있었다. 회전하는 감꼭지 치는 기계에 장갑이 말려들고, 검지손가락을 휘리릭, 순식간에
우리 만남은....고 순 덕 대학 첫 가을축제의 마지막 날이었다. 석양을 등지고 본관 전시실 앞에 있는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눈부신 노을과 석양 탓인지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다만 붉고 환한 노을 속에서 걸어 나오는 듯 한 그의 걸음은 유난히 훤칠하고 씩씩해 보였다. 후광이 비쳤다. 그가 내 앞에 걸음을 멈추고, 얼굴을 알아보기까지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느리게 다가왔다. 그것이 내 운명의 남자에게 첫 콩깍지가 씌이던 순간이다. 그는 축제 중 다쳐서
미띠기. 띴다.고 순 덕 “미띠기!” 하면서 친구의 옷자락을 잡으면, 친구는 “띴다.” 한다. “누구한테?” “너한테!” 하면서 친구를 와락 잡으면 내가 이기고, 도망가면 친구가 이기는 놀이를 해 본 일 있나요? 미띠기가 뛰어간 곳은 꼭 너가 아니고 주위에 있는 친구 누구를 해도 무방하되 미띠기가 뛴 그 친구는 잡히지 않게 도망을 가야 하는 놀이로, 메뚜기가 이리저리 튀어 다니는 모양을 흉내 낸 것이다. 미띠기는 메뚜기의 고향말이며, 주위 많은 미숙이들의 별명이기도 하다. 수 많은 김미숙이들과 이미숙, 여미
가을 담은 문풍지고 순 덕 찬바람이 소맷자락을 비집고 든다. 가을이 힘없이 겨울에 밀려 사라지려나? 아직 가을일도 끝내지 못했고, 겨울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문득 가을이 싫다는 생각이 스치고, 어깨가 움츠려 진다. 학교를 가지 않는 어느 가을날 아침, 이불속에서 나오기 싫어서 뒹굴거리는데 엄마가 방문을 들어서 떼어 냈다. 겨우 서리를 말린 찬바람이 그대로 방안으로 달려들었다. “엄마! 추와여. 왜그래?” “얼러 안인나나! 빗 조을 때 얼릉 문종우(창호지)를 발라야 다 마르지.” 그 날은 월동준비 중에 하나인 문종이를 다시 바르는
가을 무시고 순 덕 지난해처럼 장독위에 감 홍시를 하나 올려 두었다. 가을의 한가운데 와 있음을 실감한다. 지난주엔 밤이 늦도록 어린 풋고추의 배를 가르고, 가루를 발라 쪄 널었다. 긴긴 겨울 특별한 반찬꺼리가 없을 때 기름에 튀겨 설탕과 소금을 솔솔 뿌려 먹으면 별미인 고추부각. 누렇게 변한 깻잎도 한장한장 따 포개 묶어 삭히고, 양념간장을 얹어 깻잎짱아찌도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고들빼기도 캐서 삭혀야 하고, 조금 더 있으면 찬바람이 일고 서리가 내리면 가을 무시(무)를 뽑고 말려야 한다. 무시, 무꾸, 조선무라고도 하는 가을무
수학여행...고 순 덕 끝나지 않을 듯 불타던 여름이 어느 날 길게 내린 비를 경계로 훅 가을이 되어 버렸다. 들판의 벼들은 황금물결을 일으키고, 겨울을 준비하는 아낙들은 풋고추들을 따 고추부각과 짱아찌 준비를 한다. 배추도 이에 질세라 포기를 키우고 속을 채우고, 감 떨어지고 밤 떨어지는 가을이다. 국민학교 6학년, 중2, 고3 때 가을이면 1박2일 또는 2박3일 버스를 대절해 타고 떠나던 수학여행. 대구달성공원과 경주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포항제철, 남해, 그리고 돌아오면서 안동댐에 들렀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때에는 설
추석명절의 웃픈 기억고 순 덕 “엄마 나 오늘 또 병원 다녀왔어.” “왜?” “명절 증후군이지 뭐.” 일단 코웃음부터 흘린 후 “야 니가 무슨 명절 증후군?” “명절 준비하느라 일이 많아지니까 그러지. 토요일까지 예약이......” 애견카페에서 애견미용사 일을 하는 둘째가 앓는 소리를 한다. 애완동물들도 명절맞이를 위해 용모를 단정히 하기위한 미용이 부쩍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많은 며느님들이 명절 증후군을 앓고 있는데 ‘시’자 너무 편견을 가지고 보지 마시라 조심스레 말하고 싶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나도 누군가의
책가방 속 스타들고 순 덕 젊은(?) 청소년 이었던 배우 최재성은 나의 우상이었고, 책갈피로 코팅된 그의 사진을 마치 부적처럼 지니고 다녔다. 매주 토요일 낮차시각까지 여유가 있는 날이면 당시 피닉스라고 하는 소규모 백화점 내에 있는, 스타들의 브로마이드나 사진 등을 팔거나 코팅해 주는 가게를 들리는 것이 여고시절 최고의 즐거움 이었다. 중학생 땐 촌아이여서인지 학교 앞 문방구에서 연습장이나 책받침, 아이스크림 콘 속에 들어있는 스티커 사진을 모으는 게 고작이었지만, 고등학생이 되어 시내 사는 친구들을 보니 차원이 달랐다. 스타들에
별이 빛나는 밤에....고 순 덕 결혼 전, 난 무엇에 집중하느라 밤을 지새워 본 기억이 없다. 열심히 공부를 하지도, 밤새워 책을 읽지도, 시험 전 벼락치기를 해 보지도 않았다. 결혼 후 아이가 아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거나,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느라 분노와 염려가 뒤섞인 밤을 하얗게 불태운 기억이 있을 뿐. 심지어 요즘은 밤잠을 설치거나, 잠이 부족하면 다음 날 두통으로 인해 퇴근 시간만 기다리곤 한다. 그런데 오늘 밤은 낮잠을 충분히 잔 탓인지 늦게까지 드라마를 보고 문득 마당을 나섰다. 까만 밤하늘에 별이 총총, 그
버스 안에서고 순 덕 국민학교, 중학교 9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십리 길을 걸어 지각 한 번 않고 개근을 하며 다녔다. 타고나기도 달덩이에 우량아로 태어나긴 했지만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십리 길을 오고 간 덕에 비록 다리는 조선무(종아리가 굵은)가 되었지만 어쩌면 지금까지 건강하게 버틸 수 있는 초석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렇게 걸어서만 학교를 다니다가 드디어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게 된 것은 점촌 시내에 있는 여고에 입학을 하고 부터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일곱시 첫 차를 타고 등교하는 길은 힘들기도
개학. 청소고 순 덕 123번에서 문자가 왔다. “태풍 솔릭 북상으로 장기간 정전피해가 예상됩니다. 비상전원확보 등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 한전.” ‘아! 정전. 초가 어디 있더라?’ 문자를 보고 먼저 한 생각이 초를 어디 두었지 하는 거였다. 정전시 밖에 나갈 일이야 없겠지만 어쨌거나 그 때는 손전등을 사용하면 될 테고, 방에서 장시간은 초를 켜야 할 텐데...... 자신의 몸을 불살라 주변을 밝히는 희생의 대명사 양초. 어릴 적 양초의 또 다른 용도가 있었으니 마루바닥을 매끄럽게 닦는데 사용 되었다. 초∙중ͨ
순더기의 일기2018년 8월 19일 일요일 날씨 맑음고 순 덕 나는 어제 꼬마와 충주에서 만나 놀았다. 밤에 불이 환하게 켜진 무슨 월든가 하는데도 갔다.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오늘은 아침 일찍 수건으로 제기를 만들어 차고 놀았다. 아카시 이파리떨기 내기도 하고, 공기놀이도 했다. 그리고 꼬마는 서울에서 미용실 원장님인데 내 머리를 뽀그리머리로 바꾸어 놓았다. 참 재미있었다. 매일매일 꼬마하고 놀고 싶지만 이젠 어른이라 그럴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꼬마는 서울로, 나는 상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에 또 놀자고 약속했다. 참
용돈이 없던 시절...고 순 덕 “엄마 10원만!” 이라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그 시절. 배를 골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늘 왜 그리도 입이 심심하고, 먹고 싶은 게 많았는지. 들로 산으로 먹을 것들을 찾아다녔고, 또 돈으로 바꾸어 엄마에게 받지 못하는 용돈을 스스로 만들어 쓰기도 했다. 뽀삐, 짠데, 찔레순, 말밤, 올미, 까마중, 깨금 등은 자연에서 그저 얻을 수 있는 먹거리들로 서리를 할 필요도 없는 먹거리들이다. 이것들이 배를 불리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먼 등하교길 복권과도 같은 길동무가 되어 주었다. 여름 등굣길엔 주머
빨간 돼지저금통의 추억고 순 덕 8월. 연 초에 세웠던 계획 중 현재까지 지켜지고 있는 것. 혹 몇이나 되나요? 어릴 적 연 초 계획 중 독서, 일기쓰기, 그리고 저금에 대한 기억들이 있다. 요즘도 그렇겠지만 그 옛날 집집마다 빨간 돼지저금통 한 마리씩은 있었을 것이다. 우리 집도 그랬다. 설날 받은 세뱃돈으로 작고 빨간 돼지저금통을 사서 올해는 꼭 가득 채워 예쁜 가방이나 구두를 사고 싶었다. 돼지의 무게를 늘이기 위해 애써 100원짜리 지폐를 10원짜리 동전으로 바꾸어 넣기도 하고, 동생 것이 더 무거운가 내 것이 더 무거운가